2024. 8. 25. 18:47ㆍ리뷰
영화를 함께하게 된 과정
마고 로비(바비)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기대하지 않았고 B급 영화 정도로 시간만 때울 생각이었는데 할리 퀸으로 나왔던 마고 로비의 팬이 됐다. 이후에 '바비'의 주연으로 나온다고 해서 챙겨보게 되었다. 물론 라이언 고슬링(켄)도 진지한 역할을 많이 했는데, 바비에서는 유머러스하게 나오기 위해 노력했다는 얘기를 듣고 궁금해졌다.
오프닝부터 범상치 않다
영화의 오프닝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오마주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인류 최초의 도구 발견 장면과 최초의 성인 인형의 등장을 매치시켰다.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존재의 등장, 그것은 바비 인형이었다. 남자아이들에게 장난감은 무궁무진했지만, 여자아이에게 장난감은 인류사를 통틀어 늘 아기 인형이었다. 아기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출산, 육아, 살림 등을 배웠다. 성 역할을 한정 짓는 아기 인형 놀이에서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하는 성인 인형으로의 전환은 1950년대 시대상에 부응하는 것이면서 혁신적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많은 미국 남성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남성들은 나라의 부름에 응해 전쟁터로 갔고, 사회의 일자리에 필요한 인력이 부족해졌다. 그래서 많은 여성 인력이 사회로 진출하게 되었고, 사회 전체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이즈음부터 육아와 살림 말고도 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주제는 힘이 있지만 스토리에는 유연함이 있다
바비는 바비랜드에서 늘 행복하게 걱정 없이 살고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렇게 즐거울 거라 믿었다.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었다. 바비랜드에는 켄이라는 인물이 있지만, 대통령부터 노벨상 수상자까지 모두 여성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바비는 "죽는다는 생각 해본 적 있어?"라는 대사를 던지고 만다. 그 순간 화면은 정지되고 바비는 자각하고 만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바비랜드에서 바비만 변화가 시작된다. 지붕에서 떨어지고, 바비의 발이 평평해져서 하이힐을 신을 수 없게 된다. '이상한 바비'를 찾아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 그러자 '이상한 바비'는 현실 세계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원래 삶으로 돌아갈지 혹은 우주의 진실을 알아낼지 선택하라고 한다. 그래서 바비는 자신의 주인을 직접 만나 치료하기로 마음먹는다. 이후 바비를 좋아하던 켄이 따라나서면서 현실 세계에서의 바비가 겪는 우여곡절이 시작한다.
바비는 현실 세계는 바비랜드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주위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낀 바비는 마텔 본사를 찾아가지만, 오히려 마텔 본사는 당장 그녀를 잡아들이려 든다. 세상에 인형이 돌아다니는 것을 가만 볼 수 없었던 마텔에서도 바비를 도우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도와주던 사람이 자기 주인인 글로리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글로리아는 사춘기 딸이 있는데 관계가 예전 같지 않아 마음이 쓰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글로리아는 바비 인형을 떠올려 원만했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바비 인형을 꺼냈다. 그런데 그 바비인형이 실제로 나타났다. 그래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이상한 바비'를 만나기 위해 바비랜드로 떠난다.
하지만 바비랜드는 켄에 의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켄은 바비와 함께 따라나섰지만 '가부장 제도'를 알게 된 후 마음이 바뀌어 바비랜드로 돌아와 가부장적인 사회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에 바비는 홀로 괴로워하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간다. 그런 바비를 오히려 글로리아가 위로하고, 여성들에 의한 여성들을 위한 바비랜드로 돌려놓고자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이후의 내용은 너무 스포일러라서 꼭 영화관에서 보시길 바란다.
영화의 메세지는
바비랜드는 후반 풋티지를 통해 그레타 거윅, 노아 바움백 감독이 이 영화 시나리오를 통해 무슨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지 나타난다. 한 소녀가 사춘기에 접어드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완벽하고 즐겁기만 바라던 순간에서, 죽음과 결핍 그리고 쇠퇴를 느끼는 사춘기를 경험한다. 또 숨길 것도 창피한 것도 없던 시절이 지나 사춘기에 접어들면 급격한 신체 변화와 함께 모든 것이 창피해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바비는 사춘기 이전 우리의 유년 시절을 의미하며 그런 바비를 인간화한 것이다. 바비에게 생긴 변화는 곧 우리가 인간으로서 겪는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바비가 겪는 고난(이를테면 영화에서 나타낸 가부장제도)을 극복하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 그리고 다양한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도 현실에서 같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하는 여성상이 있지만 그에 짓눌려 홀로 괴로워하는 모습도 마고 로비의 연기로 인해 도드라지게 표현했다. 사회가 변화해야 하는 것이지 내가 사회에 맞게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했다. 바비는 예전에 비현실적인 신체 비율과 과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요소로 비판을 받아왔다면, 이제 상품으로도 현실적인 비율과 인종 구성을 보유한 만큼 이런 당당한 주체적인 역할로서 자리매김하는 점은 신선했다. 달성해야 하는 목표, 완벽한 이상, 완벽한 여성 그 무엇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우리는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고, 그건 달성하는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우린 그런 존재라는 점도 함께 말이다.
핑크색 위주의 화려한 색채와 인물들 간의 웃긴 대사를 통해 자칫 가벼워 보이고 코미디가 부각될 수 있지만, 이런 전체적인 주제의 울림은 절대 가볍지 않다. 우리 시대에서 휴머니즘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바비 또한 놀라운 흥행을 통해 휴머니즘의 거대한 흐름에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바비를 통해 그레타 거윅의 작품을 좋아하시게 되었다면 '레이디 버드'는 꼭 보시길 바란다. 내 인생에서 손꼽히는 명작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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